별_아버지_1
뒷 정리가 끝나고 야심한 시간이지만, 길고 넓은 도로는 찬란하게 빛나는 가로등과 빌딩 숲의 몽환적인 네온사인 간판으로 낯보다 더 밝고 아름답게 보인다.
가을이라 그런가 가로등과 네온사인이 살짝 건조해 흐트러진 시야속에서 부서지면서 SF 영화속 사이버 펑크 같은 느낌이 난다.
백화점에서 정식 직원도 계약도 직원도 아닌 장기 아르바이트 사원이라는 직함이지만, 하루 일과가 끝나면 무언가 보람차고 오늘하루도 멋지게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아름다운 이 도로를 걷다보면 드라마 속 낭낭한 청춘 주인공 중 하나가 되는 느낌이다.
계획된 도시라 큰 대로와 상업지구 그리고 공원 주택지구가 거리감 좋게 조성돼 있다. 이런 동네에서 사는게 꿈이었고 살고 있는데 왠지 좀 외롭다.
집에 가는 길은. 집이라고 해야하나 싶은 그 곳에 가는 길은 더 아름답다.
아름다운 대로에서 벗어나 한적한 공원같은 길에 들어가면 멋들어진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지나고 나이가 꽤 있어보이는 나무를 여러그루 지나 성당을 지나치면 아파트 단지가 나온다.
내가 만들어 낸 누울 공간은 아니지만, 어려운 형편을 보고 도와준 친구 덕에 아름 다운 곳에 산다.
그래도 일이 끝나고 혹은 나쁜 감정이 들어도 심신이 안정되는 공간이며, 어려울때 의지가 되는 친구가 있어 든든한 공간이다.
집에 다왔는데 여자친구랑 놀러간다는 문자가 왔다. 열쇠가 없는데 ...열쇠는 우편함에 넣어놨다는 문자가 하나 더 날라왔다.
오늘은 혼자구나 게임이나 하다가 자야지, 요새 혼술이 유행이라는데 들어가면서 맥주 캔 하나 사갈까낭.
낭낭한 마음이 앞선다.
아파트는 18평 정도 크기에 2개의 방과 한개의 화장실 그리고 거실과 부엌이 있다. 방 하나는 옷방으로 다른 하나는 노는 장소로 그리고 잠자고 먹고 하는 공간을 넓다라한 마루에서 해결하고 있다.
마루에 침대랑 쇼파 티비 탁상 컴퓨터 2대 등등이 있어 노는 방보다 좁은 느낌이 든다.
나름 도와주고 싶어서 고시원에 살고 있는 날 친구가 불렀는데 처음 월세와 생활비로 30만원을 요구해 많이 당황했다.
보증금 30만원에 월세 8만원짜리 고시원 옥탑방에서 나름 좋은 조건으로 살았다. 화장실과 욕실은 아래층 공용을 이용했지만 홀로있는 옥탑방이라 주변 신경 별로 안 받고 편했었다.
그래서 8만원에서 30만원으로 주거비용이 올라가는 것에 심도있는 토론을 했고 뭐 반 깎아서 15만원으로 합의 봤는데 뭐랄까 그냥 매달 우리 생활비로 쓰이고 있다.
쌀통같은 통에 15만원씩 친구가 있는 앞에서 넣어 놓으면 그돈으로 술도 마시고 놀고 한다. 하지만 정작 그돈은 많이 쓰이지 않고 모여있다.
친구놈이 놀때도 놀러갈때에도 날 항상 챙기면서 내돈 쓰라는 소리를 함께 모은 돈을 쓰자는 소리도 안하고 자기가 전부 계산한다.
간혹 그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서 계산을 하기도 했는데, 얼마전 알바 월급을 받아 내가 대접할 요량으로 함께 밖에서 곱창을 먹고 내가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미리 계산을 해버렸다.
이런식으로 같이 무언가를 하면 내가 돈을 쓰는 상황을 안 마들거나 자기가 먼저 계산을 해버린다. 그래서 처음 부담이라고 생각했던 주거비용은 부담이 아니게됐다. 친구한테 너무가 감사하고 고맙다.
갑자기 돈생각이 나서일까 캔 맥주 하나 사려고 했던 의지가 사라진다. 살도 좀 뺄겸 공원이나 좀 돌다 집에 들어가야 겠다.
공원한 한 구역마다 작은 운동장 같은 공토가 조금씩 있다. 공터크기는 한 곳은 농구장으로 한곳은 배드민턴 장 등으로 쓰인다.
간혹 여기서 주변 고등학생들이나 중학생들의 패싸움을 보기도했다. 저기에도 한무리가 보인다 그만 돌고 집에 들어가야겠다.
대학교 들어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렇게 알바를 하며 친구집에 얹혀 살게 될 줄은 몰랐다.
나름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고대를 나왔고, 매학기 3차 시험 중 한번은 과탑을 했고, 동아리연합회 회장도 하고, 졸업하기 전 취직도 했었다.
연구직이라서 일까 수습을 떼고 좋은 조건으로 연봉조정을 했는데, 자주 만져야 하는 생화학 물질에 알러지 반응이 일어났고, 더이상 동종업계에서 적어도 연구소나 개발쪽에서는 일하지 못하게 됐다.
그 때 회사에서 다른 부서로 보직이동 시켜준다고 했는데 그말을 듣지 않고 나와 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많이 어리석었다.
집은 대학교 4학년때 무너져 버렸다. 무리하게 사업을 하신 아버지 덕에 지금은 엄마, 아빠, 나 이렇게 3식구가 모두 뿔뿔히 흩어져 버렸고, 한달 이자만 450만원 이상의 빚이 생겼다.
대학원 준비를 위해 랩실에 매일 출근하고 학과 공부하고 있던 돈이 필요해 회사를 찾는 것으로 선회했고, 교수님 추천으로 나름 중견기업에 들어갔다.
교수님 추천이라 내가 못하면 교수님과 학교를 욕하는 거라 생각하고 정말 열심히 일했다. 9시 출근인데 7시에 출근했고 18시 퇴근인데 03시에 퇴근했다. 그렇게 3개월하니까 좋은 성과가 나와 내가 만든 아이템이 다른 회사와 거래하는데 큰 역활을 했다.
회장이 주는 상도 받았고, 이렇게 하면 다 잘 될꺼라고 머리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몸은 그렇지 못했나 보다.
여튼 일을 그만두고 보니 돈도 없었고, 가진것도 없었고 잘 장소도 없었다. 그냥 무작정 기숙사 짐을 다 빼서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갔다.
그리고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취업을 준비했지만, 뭐 결론은 지금이다.
보일러를 켜놓고 나갔나보다 집이 따뜻하다. 가스비 걱정안하고 살다니 무서운 놈. 나때문에 켜둔건가?
핸드폰 진동이 우우웅 하고 울린다. 벌써 아침인가 싶어 전화기를 보니 새벽 2시. 군대를 갔다와서 정확히 말하면 집이 망하고 나서 연락을 끊었던 친구들 중 한명에게서 전화가 왔다.
큰일이 났다는 게 직감적으로 밀려왔다. 받는게 망설여 졌지만, 일단 받았다.
큼큼 목을 가다듬고, 마치 아무일 없었다는 듯한 목소리로
"기주야, 오랜만이다. 무슨 일이야?"
전화 넘어에서는 담담하게 말이 나왔다.
"오랜만에 염치없지만 그것도 늦은 시간에 미안해.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말을 잊지 못했다.
"어디야?"
작은 정적 후 기주는 담담하게 말했다.
"인천 길병원이야"
"지금 갈께"
단촐한 대화를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옷을 입으려고 보니 검은 양복도 아니 검은 옷도 없다.
일단 청바지를 입었다. 빨간 티라니... 이 계절에 입을 옷은 빨간 티밖에 없다... 돈도 없다... 지금 여자친구와 좋은 시간을 보낼 친구한테 미안하지만 전화를 걸었다.
"야 뭐야? 무슨일이야?"
"야 미안 좀 급해서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검은 옷과 돈이 좀 필요한데 우리 공금이랑 너 옷 좀 빌리자. 좋은 시간 보내는데 미안하다"
"야 그런건 쓰고 나서 말해도 돼. 그리고 여친이랑 헤어졌다. 씨뎅. 내일 술이나 한잔 하게"
"그려 고맙다"
"잘 갔다와"
친구 양복을 입어봤다. 안맞는다. 검은 티가 있어 일단 그걸 입었다. 쌀통 같은 공금통을 열었다. ... 돈이 많다.... 일단 15만원을 꺼냈다. 텍시비 왕복 5만원 부조금 10만원... 이런걸 이상황에 생각하고 있는게 놀랍다.
허겁 지겁 나갔다. 나와서 보니 윗등이 살짝 찢어진 운동화를 신었다. 신발이 이것밖에 없다.
갑자기 내가 추레해 보였다. 아파트 단지 앞에는 텍시가 많은 편이다. 늦은 시간이라 살짝 불안했지만, 마침 텍시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내리는 아저씨가 보인다.
그 텍시를 탔다.
"기사님, 인천 길병원으로 부탁드립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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